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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행복

-화양연화- 2020. 9. 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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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행복 [도서리뷰]


안녕하세요 화양연화입니다

오늘은 즉문즉설 강연으로 유명하신 법륜 스님의 

'행복'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정리해봅니다.



언젠가 강연 서두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남녀노소, 얼굴이 검든 희든, 신체가 건강하든 장애가 있던, 성적 지향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종교가 불교든 기독교든 있든 없든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살아가 보면 그렇지 못합니다. 행복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합니다. 

짧은 순간 순간들이 이어져 인생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소중한 순간들을 불안해하고 조바심 치느라 놓쳐버리고

뒤늦게 후회합니다. 조건이 나쁠 때는 좋아지기만 바라느라 눈이 멀고, 

조건이 좋아지면 이제는그 좋은 조건이 사라질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러느라 한번도 제대로 행복해보지 못한 사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갑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꿈을 찾는다고 현실을 등한시하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좋아하는 것만

찾아 다닌다면, 인생을 허황하게 살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밥벌이에만 급급하다 보면 미래에 희망이 없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상을 좇을 것인가, 현실을 중요시할 것인가를 놓고 항상 갈등합니

다. 그런데 이상과 현실은 모순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두 발은 현실에 딱 딛고 서서 두 눈은 이상을 향해서 한 발씩 나아가면 됩니다.

좋은 미래는 막연히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니에요. 연구하고 도전해가는 과정에서 

꿈꾸던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겁니다.




허위의식의읙감옥에서 걸어 나와라


우리는 현실에 있는 자기를 자의식이 원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만 발전이라고 생

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기 자신에 만족할 때까지 너무나 힘

들고 어렵습니다. 행복은 현재의 자기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

니다. 나는 원래 이 정도 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긍정하면 되는 거예요.

넘어지면 넘어지는 것이 나고, 성질내면 성질내는 것이 나입니다. 그런데 나는 쉽게 

넘어지거나 성질내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질내는 자기를 보는 것이

괴로운 거예요. 내가 생각으로 그려 놓은 자아상을 움켜쥐고 고집하니까 현실의 내

가 못마땅한 겁니다. 나는 잘났다는 허위의식이 꽉 차 있으니까 현실의 자기가 부끄

러운 거예요. 현실의 나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에요. 다만 자아상을 현

실의 나보다 크게 그려 놓으면 내가 부족하게 느껴지고 좀 작게 그려 놓으면 대단하

게 느껴지는 것 뿐이에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해.

나는 실수 하면 안 된다.

나는 미워하면 안 된다.

이런 식의 자기규정은 다 허상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려 놓은 자아상이 강하면 현실의 나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책하게 됩

니다. 머리속으로 그려 놓은 자화상과 현실의 내가 별 차이가 없어야 정신적으로 건

강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도 쉽게 주저앉지 않습니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구나. 지금부터 연구해서 극복 해야겠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긍정하면서 자신의 변화를 위해 조금 더 노력하면 됩니다. 

그러나 자아상을 너무 높게 설정해 놓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만족이 생기지 않

으니까. 결국 ‘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야’ 하고 좌절하게 되지요.

열등감이나 우월감은 모두 삶의 기준을 타인에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 

삶을 내가 산다는 주인의식 없이, 내 삶을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심리적 현

상입니다. 열등감은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미달해서 느끼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세워놓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서 생기는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세상에는 열등한 존재도 우월한 존재도 없습니다. 존재는 서로 다를 뿐이에요.


 


감정은 만들어진 습관


감정 가운데서도 화는 스트레스와 후회라는 후유증을 남깁니다. 화를 내고 나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상대방에 상처를 주었다는 자책감에 후회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왜 화를 참지 못할까요? 먼저 화가 나는 이유를 살펴보면 내 마음속에 ‘내가 옳다’ 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잘난 내가 보기에 다른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서 화가 나는 것이지요.이런 감정은 내

면에 깊이 깔려 있어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는 무의식 속

에서 잠재 되어있다가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옵니다.

우리가 화를 벌컥 내고 난 다음에 흔히 하는 말이

있지요. ‘나도 모르고 그랬다’ ‘습관적으로 그랬다’

무의식적으로 그랬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실제로 감정이란 무의식에서 나오는 

습관화된 반응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선뜻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 이렇게 반문하기도 합니다. “화를 낼만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러지요.” 그런데 잘 

살펴보면 ‘화를 낼만한 상황’이라는 기준 자체가 지극히 자기 중심적입니다.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그 안에서 축적된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가치관이나 관념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내 생각이고 내 취향이고, 내 기준에 불과 합니다. 따라서 화가 난다는 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옳고 당신이 틀렸다는 내 분별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사건건 옳고 그름을 가르려는 습관이

내 안의 도화선에 자꾸만 불을 댕기는 겁니다. 화낼 일이 아닌데 내 기준에 맞지 않

으니까 화가 나는 것 뿐이에요. 나를 세상의 중심에 놓고 그 주변 상황과 사람들을 

판단하니까 내 기준에 맞지 안을때 화가 올라오는 겁니다. 사실 잘잘못을 따질 수 있

는 절대적인 잣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은 본래 없습니다. 나를 기

준으로 삼으니 상대가 잘못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객관적이라고 주장해버리면 자기를 절대화 하는겁니다. 이렇게 되면 ‘고집

이 세다’ ‘독불장군이다’ ‘꽉 막혓다는’는 소리를 들을 수있어요..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이 분명한 사람일수록 화를 잘냅니다. 분별심이 강할수록 성

질이 많이 올라오지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화가 적은편이에요.

주관적인 잣대를 내려놓으면 내가 옳다고 고집할 근거도 없고,

당신이 그르다고 비난할 이유도 없지요.

그런 마음 상태에서는 화가 일어날 여지가 없습니다. 

자기생각과 자기 기준에 맞춰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감정을 드러내기에 앞서, 상대

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법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작용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우리는 ‘상대는 나와 다르다’는 전제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처음엔 경계하고 탐색해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 공통점을 하나 둘 발견하면

“나하고 생각이 같네” 나하고 “고향이 같네”

“나하고 성이 같네”하면서 반가워하고 금방 친해지지요. 그래서 친구가 되기도 하고

애인이 되기도 하고, 동료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일단 가까워지면 서로가 다르다는 전제가 ‘우리는 같다’는 전제로 바뀝니다. 

그러면 비로소 관계가 단단해진 것 같지만 사실 그때부터 갈등이 시작됩니다.

상대가 나와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내다 보니 아니거든요. 성격이나 생각은 물론 입

맛까지도 다 다른 걸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변한게 아니에요.

내가  그 사람의 일부만 보고 나와 같다고,

나와 잘 맞다고 판단했을 뿐이에요. 

그런데도 마치 상대가 새삼스레 행동하는 듯,

 뭔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듯 생각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모든 갈등은 관계 맻기에서 시작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그럴 때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는 인연이면 문제될게 없습니다. 

또 싫어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인연일 때에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는 인연이되면 

괴로워집니다. 우리는 흔히 관계 때문에 괴로움이 생겼으니 그 관계를 

끊어버리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안 보려고 하고, 결혼을 했다 가도 

쉽게 이혼하고, 가족 간에도 불화가 있으면 집을 뛰쳐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행복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 외롭고 괴롭습니다.

괴로움은 관계를 맺어도 생기고, 그 관계를 끊어도 생깁니다.

행복하려고 맺은 관계가 괴로움을 일으키는 것은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가 잘

못 맺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관계의 갈등은 서로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성격, 종교, 지

역, 습관, 등이 달라서 실망하고 괴로움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생긴 모양을 

보세요.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제 각각 다 다릅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다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마음이기를 바랍니다. 그

러다 보니 상대가 내 마음 같지 않다고.. 서운해 하고, 자신의 뜻대로 해주지 않는다

고 원망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서로 생각이 달라 어쩔 수 없이 갈등이 생길 때 이문제를 해결하는 방

법은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기입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게 되면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내가 옳고 네가 틀리다"는 뜻도 아니고 “네가 

옳고 내가 틀리다"는 뜻도 아닙니다..그냥 “우리는 서로 다르다"라는 걸 인정한다

는 거에요.

서로 다름을 인정하게 되면 “나는 이런데 너는 그렇쿠나” 이렇게 말할 수 잇습니다.. 

이렇게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는 것을…. 존중한다고 합니다. 

이때 존중이란 옳고 그름을 가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거에요.


둘째는 이해하기입니다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겟구나” 하고 이해하는 거에요 “아이 입장에서는…

남편입장에서는… 아내입장에서는..  그럴수 있겟구나…이것이 이해하기에요,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기. 

이것이 모든 인간관계 맺음에서 가장 기본적인 태도 입니다..

인간관계를 맺을 때 이 두 가지를 명심한다면 갈등의 대부분을 줄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계는 이기심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대부분 이기적이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고 할때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이기심이 작용합니다.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도 경제적인 조건이나 학벌, 신체조건,성격 등을 두루 고려해

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을 선택해요. 부모 자식 간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겟지

만 이기심이 작용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좋아하는 것도 단지 낳아주고 길러주어서 

일 뿐만 아니라 부모만큼 자식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이렇듯 인간관계에는 이기심이 숨어 있게 마련이라 

한 두 번 만날 때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 가도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갈등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기심을 갖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이기심을 갖고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이익을 따져서 사람을 만나듯이 다른 사람들도 다 이해관계

를 따져보고 사람을 만난다는걸 이해하면 이기적인 사람을 나쁜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으므로 사람 사이의 갈등이 대부분 줄어들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3을 주고 7을 받을 생각이었으면 상대방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면 서

로 3밖에 받지를 못하니 서로 실망하겠지요. 상대에게 불만스럽고 실망스러운 건 7

일 기대했던 내 마음 때문이지,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에요.

인간의 심성에는 이타심도 있고 이기심도 있습니다. 

위기에 처하면 이타성이 발휘되기도 하지만, 사람이 늘 이타적일 수는 없어요. 이타

심은 저~ 무의식 아래 있고, 이기심은 그보다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기심이 더 쉽게, 더 자주 드러나는 거에요.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 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때부터는 이기심을 가진 

상대에게 과연 내가 어느 정도까지 맞출 것인가, 하는 내 문제로 바뀝니다.


이기심을 버려야만 세상에 평화가 오는건 아니에요

내가 이기적이듯이 상대도 이기적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갈등이 크게 줄어듭니다.





'기브 앤 테이크'는 거래지,

 관계가 아니다.


서로 주고받는다는 뜻의 ‘기브 앤 테이크’라는 말이있습니다.이것이 관계에서는 공평

한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를 위해 이러 저

런 일을 해준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자꾸 대가를 바라게 되고, 바라는 그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면 괴로워져요. 더군다나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 

생각에 좋아 보이는 걸 해주면서 ‘내가 너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면 갈

등은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너를위해 이렇게 해주는 데 너는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냐‘ 하는 것은 거래에 불과합니다.내가 좋아서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대가를 바라면 그때부터는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바라는 그마음이 채워지지않으면 섭섭한 마음이 쌓이고  갈등이 불거지게 됩니다.

가까운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사랑을 준 만큼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

랑을 주면 받을 확률이 높지만 행여 못 받게 되었을때는 고통이 따릅니다 .

그러면 배신감이 들게 됩니다..

‘받지도 못할 사랑을 내가 무엇 때문에 주었나’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이 미움이 되고 

실망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은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준 만큼 받고 싶어하는 내 마

음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까지 하는데 너는 도데체 뭘 해준거냐 

하는  원망하는 마음이 따라붙습니다.

그러나 상대를 위해서 하는 일이 사실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인 줄 안다면 , 

그 일을 하면서도 상대에게 기대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깃들지 않게 됩니다.그러니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끼리 심리적인 거래는 그만두고 이제라도 진정한 관계를 맺어

보세요.




나무는 서로 어울려 숲을 이룬다


산에 가면 소나무만 빽빽이 자라거나 키 큰 나무만 자라는게 아니고,

소나무와 낙엽송이 섞여 자라기도 하고 키 큰 나무 아래 키 작은 

나무가 자라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갈등 없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부부든 친구든 모든 사람 관계가 다 그렇듯

더불어 살려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가고 싶지만 저 사람은 가고 싶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되고 , 

나는 널 좋아하지만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매사를 자기 식으로, 자기 입장에서 바라봅니다. 

저마다 자기 관점을 고집하다 보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와 다를 뿐인데 잘못됐다고 생각하니까 싸움이 일어나는거에요

누군가를 변화시킨다는 건 대단히 힘든일 입니다.

그래서 내가 맞추는 게 가장 쉽고 빠른 해결책 이에요.

그런데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한번 바꿔보고 싶을 때 

정말로 애정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고치려고 들지 

말고 지혜롭게 변화를 유도해야 합니다. 

지금 인간관계에서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시선을 한 번 달리해보세요. 

상대의 장점을 찾는 시선으로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다보면 

상대에게 감사할것들이 더 눈에 들어오고, 

그러면 행복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게 됩니다.


온전한 행복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내 삶의 주인이자 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내 행복은 누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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